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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바북한 스테이지_리뷰] 꾸준함과 좋은 태도를 가지고 글로 소통하니 돌아온 대단히난 효과 by <회색 인간> 김동식 작가 좋구만
    카테고리 없음 2020. 2. 21. 14:21

    이 20하나 9년 하나 0월 26하나,'강북 독서회-'와 북파 북한의 광화문점에서 함께 진행한<회색 인간>김동식 작가 스테이지 강연 전문을 정리한 글입니다. 북북스테이지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는 시간을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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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식 작가님, 이하 생략) 만나서 반갑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톡은 책 이야기를 하는 자리인가요?(웃음) 사실 제가 책 이야기를 잘 못했어요. 왜냐하면 한권에 24의 소설이 있고 무엇 말을 해야 할까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강연에 가면 내 말을 하고 오죠"(웃음)거의 항상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2회 들 온다는 긴장되지만, 오・항시의 일본은 오지 않았나 봅니다."(웃음)제가 어떻게 인생이 갑자기 변했는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갑자기 많이 변했어요. 그래서 달라진 게 너무 신기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겪었던 견해, 생각을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1단 나는 어디 가서 나를 작가로 소개하지만 작가라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어떻게 나쁘지 않고 같은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신기하고 가득합니다.작가가 되지 않은 이유를 1개씩 들면, 저는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그때 그 후 평생 배움이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라 학교에 가면 혼나지 않을 뿐이에요. 준비물 안 가져왔다고 숙제 안했다고 혼나지 않는다고. 꾸짖지 않고만 있어서 너무 가기 싫은데 어느 날 보면 우리 반에 나처럼 숙제도 하지 않고 준비물도 안 가져완 아기가 둘 있는데 그 글씨들은 화내지 않을 거죠. 이상하게 보니까 그 둘은 검도부였어요. 체육을 하는 유아들은 선생님이 간섭을 하지 않아요. 체육에 전념하라고. 그것을 보고 "나쁘지 않아도 검도부에 들어가자. 그러면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견해로 검도부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면실제로숙제를하지않고,준비물을안가져와도간섭하지않아요. 체육만 열심히 하세요. 너무 좋았는데 검도부가 학교보다 더 싫었어요. 숙제하고 준비물 가져와보다 낮 6시에 가서 경기장을 돌아야 되는 마지막 나쁘지 않다고 집에도 못 가서 매 1'머리, 머리, 허리, 허리'를 계속하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다.( 웃으며 소 음)그것이 힘들어서 학교를 없는 상점이 참석 1수가 부족하고 학교에서 저에게 선택권을 줬다. 퇴학당할지, 퇴학할지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왕이면 제 발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으로 자퇴를 선택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 평생 학교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이에요.학교를 그만뒀을 때 저는 너무 가벼운 감정으로 그만뒀어요. 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그만두어도, 무엇을 해도, 잘 살 수 있다는 증거가 없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절대 이런 증거가 없을 자신이 있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공부도 못했고 꿈이 있었던 것도 없이 쟈루하고 나쁘지 않은 나쁘지 않는 1번 아닌 가정 환경도 매우 가난 했거든요. 아빠도 없고 시골 옆방에서 누구랑 누나 예쁘지 않다고 살았어요. 거짓없이 절대적 증거가 없을 자신이 없어야 할 환경이었는데, 그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제가 게이더를 아주 잘했습니다. 오락실에 '킹오브파이터즈'라는 예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장이 나서 어떤 곳에 붙어도 지지하지 않아요. 시내에 원정을 나쁘지 않아 가고 봐도 50연승을 할 정도로 많이 했어요. 그 때 저는 착각을 한 거예요. ("나쁘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케이타에서 "나쁘다, 무족이라도 좋으니까, 나쁘지 않다, 대단한 사람으로, 무엇을 해도 잘 먹어도 좋다"라는 견해를 나타냈습니다. 공부를 안 해도 나쁘지 않으면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 가벼운 감정으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1단 학교를 1작 이제 그만두면 내가 선택하는 1폭이 매우 좁아진 거예요. 단순 반복 작업, 몸만 있으면 할 줄 아는 공사 현장이나 건설 현장, 아니면 배달 1위에 불과했지만 내가 그런 1을 잘 못 했습니다.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심할 경우 오토바이를 타는데 무서워서 하루 만에 그만둔 것도 있습니다. 바느질 공장에서는 가위를 하는데 손이 아프다고 31후에 관뒀어요. 건설 현장 따라다닐 때는 무선 전화국 1이 끝난 뒤 다음 현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늦게 끝날 거예요.(웃음) 뭘 해도 제대로 못하고 저 핑계로 그만뒀어요. 어렸을적 저는 정예기 집에서 게임만 하고 만화책을 보고 그렇게 대책없이 가끔 보낸것 같습니다. 만화책도 정예기 많이 봤고 하필 그때 디아블로가 나쁘지 않았으니까(웃음) 이 게이더들이 제 인생을 많이 먹었어요.(웃으며) 그렇게 놀기만 하다가 깨달은 건 처음 8살 때 주민등록증이 나쁘지 않은 걸 본 순간 제가 성인이 된 것 같았어요. 와, 드디어 정부에서 나를 성인으로 인정해 주는 건 나쁘지 않아요. '성인이 됐으니까 내 벌이는 내가 하는 나쁘지 않다, 이게 됐네'라는 견해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나쁘지는 않다, 아이를 키워야 한다, 라는 견해가 있어서 그때 부산에서 집을 나쁘지 않고 대구에서 독립하게 되었다. 그동안 1들을 모질게 못한 이유는 돌아갈 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배수진을 친다는 마음으로 대구까지 가서 방을 구했습니다. 당시는 바닥에 타고 1까지 인테리어 기술자 분들을 따라다니며 기술도 배우고 보조하면서 그 1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나쁘지 않고 1이 너무도 켜지지 않아요. 몇 번 따라갔을 뿐, 한 달에 몇 번 나쁘지 않아요.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 근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그때 거실 그늘에 내가 할 수 있는 1을 찾아냈다고 교은헤헸습니다. 워낙 연예인을 나쁘지 않아서였겠지만요. 여기 1은 너무 좋아, 자신이 잘 된 1과 교은헤하고 1이라 에 이들은 동새 3년을 1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내가 정예기 어리석었던 것이 시급을 최초의 900원 받았지만 3년 동안 한번도 오르지 않습니다. 주위에 어떤 금액도 적다고 말해준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당시 내가 쵸쯔쵸쯔 때 테러식, 휴일은 없고 3651 1 했습니다.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1 하면서도 월급이 괜찮지 않다면 만족하면서 살았습니다. 요즘 견해라면정말 바보였어요. 심지어는 함께 기술교육에 다니던 형이 2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금통에서 만원 가져가라고 하면 1끝에 나쁘지 않다고 집에 돌아왔더니 그 오빠가 저금통에 있던 30만원을 모두 가져간 거죠. 정말 나쁘진 않아요, 나쁜 형이죠. 최초의 900원 시급 한달, 휴 1 없쵸쯔쵸쯔 때 테러식 1,60만원 정도 월급이 들어왔어요. 20만원은 월세 내고 20만원은 부산에 혼자 사는 옴이에 바래다주고 나쁘지 않아서 얼마 20만원에 한달 벌고, 한달 쓰는 생활을 했습니다. 저축도 못하고 미래에 대한 예정도 없었어요. 그렇게 생활하고 있었지만, 그 형이 1달 생활비를 다 가져가서 먹고 살 돈이 없어요.


    이런 모습이 아파서 봤나, 서울에 있던 외삼촌이 폐인처럼 살고 있네용코 공장 1자리를 정식으로 소개하고 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사실 내용을 쓰자면 그 당시에는 내 생활에 만족했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러나 어머니도 걱정하고 등의 이유로 큰 결심하고 2006년 3월에 서울에 갔었습니다. 성수동을 보면 신발 거리가 유명한 마을이 있어요. 거기 주물 공장에서 1 하기 위해서 올라갔습니다. 가기 전에는 조금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가서 1을 하다 보니 힘들지만 생각보다는 견딜 만 합니다. 그렇게 한달을 견디면 1의 월급을 130만원을 줄 거예요. 대구에서 60만원을 받고 갑자기 130만원을 받아 두배가 넘잖아요. 감정이 너무 좋아요. 바로 피자를 주문하면서 이 공장에 뼈를 묻히는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한 번도 결근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공장에 다녔는데, 심지어 이 공장은 월급을 올려주거든요. '월급이 오르다니' 충격 받으면서 계속 다녔어요.(웃음)


    그래서 처음일 때는 너무 보람없고 가슴 벅찬 고민은 없었습니다. 내가 맡은 기계는 원심동력기라고 해서 가운데 동그란 판자가 있는 기계인데 이 원판이 위치에서 아주 빨리 회전한다. 그러면 제가 그 원판 안에 형틀을 꽂는 거예요. 붕어빵 틀을 보면 바닥이 있고 뚜껑이 있고 그 안에 붕어빵 모양이 있잖아요. 붕어빵 대신 거기에 들어가는 작은 장식, 벨트 버클, 버튼이 나쁘지 않은 지퍼, 가방에 들어가는 금속 장식, 로고 금속 같은 모양을 넣습니다. 기계 오른쪽에 용광로가 있지만, 아연 로라, 주석이 나쁘지 않은 납이 아니며 아연 등의 금속을 500도 되는 고열로 녹여서 쇠를 유지하는 용광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 쇳물을 제가 국자로 떠서 잽싸게 회전 중인 원판의 중앙에 천천히 붓는 거예요. 500원의 구멍에 천천히 부으면 회전하는데 원심력 문에 쇳물이 밖에 타고 두 들어가탈소의 지퍼 나쁘지 않고 버튼 나쁘지 않고 그런 모양을 잡고 깬다고 물건이 완성할 거예요. 식으면 빼고 새로 금형을 꽂아서 녹인 걸 부어. 이 단순 반복 작업이 제가 하는 처음이었는데 아내 소리는 너무 무서웠어요. 왜냐하면 용광로의 열기가 아주 나쁘지는 않기 때문이죠. 손가락 다소 리그의 면, 뼈를 북상하는 듯한 느낌.(웃소리)그것을 제가 직접 국자로 떠서 부은 곳에서 500원의 구멍에 정확히 들어가지 못하고 조금만 칭크오 아니며 게 부으면 빠르게 회전하는 판에 부딪치고 뜨거운 인두가 나에게 나와서요. 작업복도 구멍이 없고 화상도 많이 입었고 눈에 들어와서 탈실명할 수 있어 아내의 목소리에는 정 스토리가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했어요. 낮부터 출근해서 기계 앞에 앉으면 하루종일 첫날이 없어요. 물러날 무렵까지 계속 같은 시작을 하니까 몇 달 뒤에는 눈을 감고 부어볼까 하는 소견이 생길 정도로 간단해집니다. 게다가 아연로 용광로가 위험하기 때문에 직원과 멀리 떨어져 처음으로 해야 했어요. 옆 사람이 눈에 띄면 위험하니까요. 그래서 바로 앞에는 벽이 있고 양쪽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차량 안에 혼자 들어가서 낮부터 저녁까지 대화도 없고 벽을 보고 녹은 쇠를 따르고 퇴근해서 이 생활을 여러 번 반복했으니까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다가 벽을 보고는 머릿속으로 잡소견 하는 거죠. 로또는 처음이 되면 뭐부터 할까, 건물주가 되고 싶어, 어디 여행가고, 영화 본 날은 이 영화의 결국 이렇게 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끝냈을까, 너희는 무서웠다, 개콘 같은 걸 보면 코너히를 짜보거나 올드 보이를 보면 내가 만약 첫 삶의 음식만 먹어야 할까 하면 뭘 먹지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정스토리는 그런 처음이 있을리가 없지만 심심하니까 벽을 보고 소견하는 거예요. 꽃등심, 바닷가재, 그때그때 떠올라 정스토리가 놀랍게도 정답이 있었어요. 처음 평생 목소리만 드시려면 햄버거를 드세요(웃소리) 왜 햄버거냐면 고기에는 단백질이 있고 빵에는 탄수화물이 있어 야채, 섬유소가 있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식단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완전 음식입니다(웃소리).그리고 벽을 보고 혼자 생각합니다. 초능력이 생기면 어떨까? 아기 공룡 둘리처럼 외계인이 나를 납치해 내게 초능력을 준다면 얼마나 나쁘지 않을까. 순간이동과 투명인간 중 가장 반갑지 않은 사람만 골라야 한다면 뭘 택할까. 하루 종일 처음 상상하는 거예요. 저는 순간이동을 선택했어요. 순간이동능력이있으면전세계적인택배사업을할수있게되거든요. 사업아이템같은것도 괜히 소견해봤어요. 예를 들어 전국의 초등학교 앞 문방구 하수구에 동전을 수거하는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실제로 제가 초등학교 때 공사를 하면 문방구의 하수구 뚜껑을 연 적이 있습니다. 당시 동전을 주웠는데 5,000원 이상 나쁘지 않고 왔습니다. 전국에 수천 개의 초등학교가 있고 문방구가 수천 곳인데 한 바퀴만 긁어모으면 큰돈을 번다고 소견했습니다.(웃소리)


    그 그와잉마 내가 매번 1똑같이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노동을 정자 프소교은, 망상으로 겨우 버텼는데


    하나하기가 정말 싫어졌어요. 뼈를 묻을 각오로 하나 해 온 공장이 증오가 되고 증오가 되는 것입니다. 매번 그만두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 공장 가기도 힘들고 하나하기도 힘들고. 공장에 출근하면 제가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뭐냐면 매일 시계만 봤어요. 그 당시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글쓰기라는 취미를 가지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중퇴한 이유로 한번도 꿈이 없었습니다. 평생 나쁘지 않은게 자신도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해야 된다, 할 수 있는 만을 하면서 살았죠.


    집에 가서 할 일이 없어요. 공장 1번 어차피 사람 1신경 쓸 일 없는 1이니까 집에서 말하는 것도 없습니다. 집에 타는 시간이 남아도 저는 어떻게든 남아 있는 시간을 보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재미있다는 걸 찾아다녔어요. 만화, 애니메이션, 웹툰, 영화, 드라마, TV, 미드등도 보고, 지상파에서 방영되는 코미디 프로그램도 전부 보고, 옛날 시트콤도 전부 찾아보곤 합니다. 인터넷 방송, 웹 소설 정예기 재미있다는 모든 콘텐츠를 찾아다녔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 하나를 봤어요. 제가 스마트폰을 샀을 때 기본적으로 깔려 있던 유머 사이트의 공포 게시판이 있었는데 그 공포 게시판에 재미있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서 제가 거기에 빠졌거든요. 그런데 그 게시판을 보면 사람들이 창착해서 글을 쓰는 활동이 활발한 게시판이었어요. 누구도 창작 단편 소설을 게재하거나 공포의 게시판 백 1장으로 장 쟈크글 대회도 열렸습니다. 그러니까 릴레이 소설인 거 아시죠? 댓글로 릴레이 소설을 쓰는 거예요. 누군가 공문에 주인공과 정세를 쓰면 누구든지 소설을 쓰고 누구든지 참여해서 나머지 소설을 쓰는 형태입니다. 저도 당연히 활발하게 참여했었습니다. 댓글에서 갑자기 주인공을 죽였어요.(웃음) 어차피 뒷사람이 그 이후의 이야기를 책이죠.(웃음소리) 이러고 참여해서 놀고 있으면 재밌어요.어느날 낮에 시간이 남을때 이런 의견을 들었습니다. '댓글이라도 쓰는데 여기서 한 시간 정도 발전하면 단편소설 한 편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정예기, 저는 작가가 꿈이나 무슨 계획이 있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시간이 남아서 지루해서 글이라는 걸 평생 처소음으로 써 본 겁니다.


    주스토리 낮에 키보드 앞에 딱 앉았는데 막상 글을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중학교 때 부터 한번도 배우지 않았던 사람이고, 공부가 완전히 끊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책도 안읽는 사람이었습니다. 북파이 북한에서 드릴 이야기보다는 아니지만(웃소리)그 당시에 한 평생 읽은 책이 10권도 안 됬어요. 책은 펴면 졸리는 것, 똑똑한 사람만 보는 것.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제가 똑똑하지 않아서 안 볼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본인 중에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책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네이버 지식인에게 '글쓰기'를 검색해 봤습니다. 기승전결이 있어야지, 점쟁이 많이 찍자, 스토리아, 간단하고 간결해야지, 접속사를 최대한 줄여라 등 온갖 팁을 주고 거기서 시키는 대로 <앞서 메이킹>이라는 단편소설을 태어난 본인 서방에서 쓴 겁니다.한 평생 하나도 안 쓴 사람이 단편 소설을 쓴 곳에서 당시가 2016년 5월이었어요. 게시판에 올릴 수가 없어요. 댁이 뒤죽박죽이어서 정 스토리는 제가 봤을 때는 스토리도안되는글이에요. 욕을 먹는 건 좋은데 아무도 안 볼까봐 그게 더 무서웠어요. 그래서 조금 잔재주로 앞에 쓴 문장을 반으로 잘라서 앞부분만 게시판에 올리고 마지막에 소심한 행을 남겨두었습니다."비록 다음 항공편이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다음 편 올릴게요라고. 그리고 누가 댓글을 달아줄 때까지 계속 재충전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50분 업데이트 한다면 한분이 재미 있자 앞으로 쳐다봐겠다고 댓글을 달매운 거예요. 그 댓글을 보자마자 뒷편을 올렸어요.(웃소리) 그리고 달린 댓글이 '재밌어요, 소름 돋아요, 감사합니다' 등의 댓글이 올라오더라고요. 그 댓글을 보고 제가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댓글을 너무 좋아해서 댓글을 받기 위해 쓰기 시작했어요. 댓글에 중독된 나를 발견하고는 하나의 규칙을 정했어요. 앞으로 31에 한번만 글을 쓰자고입니다. 그리고 한 나이 6개월간 300개를 사용했다. 그 정도 쓰려면 하루에 한 편, 가령은 이틀에 한 편을 써야 해요. 진짜 많이 썼거든요. 이것이 관종의 힘입니다.(웃음) 그때 글을 너무 좋아해서 글 중독으로 글을 많이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낮에야 작가가 됐더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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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된게 참 신기하지 않나요? 책도 안 보고 배우지도 않았던 사람, 공장에서 만 하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었는지 그뎀이 신기했어요. 어떻게 내가 작가로 불리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나무 생각 보면 크게 3가지 정도의 이유가 보였어요. 사실 내가 이런 원인, 힘으로 작가가 된 것이 부끄럽고 뻔뻔한 1승리했지만, 그래도 실제로 경험했던 것을 내용보다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몰랐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이후에는 실수하지 않도록 할게요" 등 반성하는 태도로 커뮤니케이션 했습니다. 틀릴까봐 글을 역시 봤더니 외웠어요. 이런 식으로 좋은 태도로 사람들과 소통했더니 제게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가끔 코멘트를 지적받았을 때, 싸우시는 거예요. 만약에 제가 그때 엄하게 대응했다면 바로 제 감정은 본인이 됐을 수도 있지만 정말 좋은 감정으로 조언을 하고 싶은 분도 '이 사람 감정의 본인을 모함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면서 조언을 해줄 수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무조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는 태도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조언을 해도 감정 본인에 빠지지 않는 구본인, 내 말을 곡해하지 않고 본인'이라고 소견하고 간단하게 조언을 해주시는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제게 아주 큰 이득이에요.


    여러가지 알려주세요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을요. 그때 느낀점은 지금 당장 제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유 없는 조언은 없다, 해보고 손해 볼 것은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분들이 스승이 되고 몇 본인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 주시니까 중학교 중퇴 수준의 아무것도 아닌 글이 이제 본인한테 오는 수준까지 발전이 된 거죠.


    여기서 부가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혹시 어떤 분이 저한테 좋은 감정으로 조언을 해주시고 문제점을 알려주셨는데 제가 그 다음에 문제점을 고쳐주시잖아요. 이분의 입장에서는 저를 키운 의견을 들으면서 응원하는 감정이 솟구치는 거예요.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제가 좋은 태도로 소통하면서 고치고, 자기가 갈수록 하나둘, 점점 매일 아자싱고, 결미, 그들의 힘으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거죠. 응원해준 분들이 가장이 많이 써준 댓글이 뭐냐면 제발 책 내주세요, 그냥 쓰고, 돈 받고 써주세요, 공모전이 열리는데 거기에 올려주시면 저희가 다가와서 추천할게요. 제가 제일 흔들린 댓글이 뭐냐면 '계좌번호를 열어주시면 현금을 드리겠습니다'라는 스토리가 크게 흔들렸지만(웃음소리) 직접 기회를 주려는 분도 계셨어요. 단편영화 감독님이 같이 씨더리오 작업을 하자는 제안, 그림 그리시는 분들이 작가, 그림 작가로서 협력해 웹코믹 데뷔를 하자는 제안,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도 많이 해 주셨어요. 이런 다양한 제안을 주셨는데 저는 그런 감사 제안을 다 거절했어요. 왜냐하면, 제 꿈은 작가도 아니었고, 블로거를 할 의견도 없었고,


    그렇게 감사한 제안을 주신 분 중 한 분이 김민섭 작가님이셨습니다. 과인은 지방대 때로 강사다 대리사회 훈의시대 경계인의 시선을 쓴 김민섭 작가입니다. 아내의 목소리에 제게 제안을 주셨을 때는 거절했어요. 것인데 1년 후에 다시 연락을 주고 있는 스토리보다가<기획 회의>라는 잡지에서 '킴밍소프이 만난 젊은 작가들'이라는 연재를 하고 있는데 그 젊은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나를 인터뷰하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첫 번째 단락, 젊은 작가들이라는 스토리에 기분이 좋아졌어요.(웃음) 아내의 목소리로 제안을 받아들이고 과한 줄 알고 인터뷰를 했어요. 인터뷰가 끝이라고 잉고 작가님께서 제안하셨습니다. 책을 내볼 생각은 없냐고요. 나는 내가 책을 내려면 700만원 정도 걸린다고 생각했다. 책을 내라는 댓글이 너무 많아서 시장연구를 해봤어요. 것인데 그냥 집에 가서 게시판에 올린 글로 재밌는 일 20개만 골라서 보내면 끝난다고 할 거예요. 너희들 쉬워요. 그러면 책이 과인이 된대요. 10분 할 수 있다.(웃소리)그리고 집에 가서 게시판에 올린 그들 중의 글 많이 달린 순으로 20개 골라서 킴밍소프 작가 선생님께 바래다 주었습니다. 그러자 작가님이 본인이 생각한 몇 작품과 제가 보낸 것들을 섞어 요다출판사 대표인 한기호 소장에게 아침으로 그 위로를 보냈습니다. 대표님이 밤 12시에 전화를 걸어 이야기보다 하고"아니 이런 작가가 어디에 숨어 있었습니다!! 당장 책을 내죠!!" 이렇게 스토리를 썼어요. 사장님이 극찬하면서 책을 내자고 하셨다는 거에요. 정말 기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것인데, 이런 글이 300개가 있다고 하니 대표 씨가 동시에 3권을 내겠다고 하신 겁니다. 2,000부씩 6,000부 루루요. 창피했지만 그래도 하기로 해서 출판사에 계약을 하러 갔어요. 하필이면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던게 안 팔린 책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였어요. 내 책 6,000권이 팔리지 않고 참는 모습이 상상되어 노힘브도우이이 된다. 끝과 인고 대표가 고기도 사줬는데 가끔 고개를 숙인 채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 정도로 자네들의 무과인부 뒤가 되었어요.2017년 9월에 계약하고 3개월 후의 12월 27쵸쯔에 책이 저 왔어요. 내가 걱정했던 대로 3첫 기간은 한권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게시판에서 응원하던 사람들이 빈스 토리이가 아니면 500권 정도 사서 준다는 생각에 글을 하그와잉 남겼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식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드디어 제 책이 과인이 됐습니다 감사하죠. 책을 사달라는 얘기죠.(웃음소리) 글을 남기고 송년회에 가서 제일 구석에 앉아서 듣는 이야기만 조용히 대답했어요. 먼 반찬을 집어먹으면 스토리 시킬까 봐. 정스토리는 제 존재감을 조용히 지웠는데 갑자기 편집자 분이 스마트폰을 찾으셨어요. 뭐보냐면제가게시판에남겨온글을본거예요. 그 게시판의 댓글이 어떤 멘트였냐면요.


    출판사 분들이 저를 보면서 안 좋게 생각하시면 점점 머리가 올라가고 먼 반찬을 먹게 돼서 저는 다시는 출판사에 못 갈 줄 알았는데 귀인이 돼서 자주 갔어요.( 웃으며 소 음)41만에 6,000권이 팔렸 슴니다. 저는 상상도 못했어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그렇게 많은가? 이분들이 단순히 구입해서 말리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자주 가는 사이트에 홍보까지 해 주셨습니다. 출판사에서 2쇄 6,000권을 찍었는데 이것도 2주 만에 전부 본인 갔습니다. 게다가 인터넷 서점의 특징 중 책이나 짧은 기간에 책이 많이 팔리면 순위가 확 올라가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런데 41만에 6,000권이 팔렸으므로, 갑자기 내 책 3권이 한국 소설의 하나 0위권에 들었어요. 최대 2위까지. 하나 따위는 한번도 못했어. <82년생 김지영>이 한개 등이엇습니다( 웃으며 소 음)3주째 3쇄 7,000권을 찍었던 게 한달 안에 모두 본인 4쇄에서 하나 5,000부를 찍은 것에 모두 판매가 되고, 최근 한 7쇄까지 찍었답니다. 아주 잘했어요." 이렇게 잘 된 과정을 돌이켜보면 세상 나라는 정말 어렵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 같아요 "(웃음)조금 부끄럽지만, 크게 3가지 이유 왔었다고 말했지.


    그 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재밌고 좋았기 때문인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들이 만만하게 보는 댓글, 피드백 덕분입니다. 제가공장에서위기가일어나서글쓰기로넘긴것은오전에출근해서기계앞에앉으면매일끝인지만소견하면서시계만보던사람이글쓰기라는취미가생긴후로는기계앞에앉으면벽을보면서머릿속에서상상을하기시작합니다. 집에 가서 이야기를 써야 하니까요.댓글을 달게. 머릿속에 캐릭터를 등장시켜서 배경을 짜고 결과를 만들고, 계속 이야기를 상상하다 보니까 시계를 봤을 때 퇴근 시간이 오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가지 않았던 시간이 너에게 자주 가는 거예요. 심지어 시간이 부족할 정도에요. 그렇게 견디기 힘들고 증오하고 힘들기만 하던 근무시간이 정말 견딜 수 있게 바뀌었어요. 글쓰기의 취미, 하과인들만. 그 때문에 머릿속에 이야기를 상상하고 귀가하고 집에 가면 컴퓨터 앞에 앉아 꼼짝도 않고 글을 쓰는데 12시~1시경에는 단편 하그와잉카 다 써집니다. 머릿속에 있는 소견을 옮기기만 하면 되니까요. 원래 알람이 울리면 첫 번째 어과가 되는 것이 정말 힘들었던 사람이었는데 아까는 알람이 울리자마자 첫 번째 어과예요. 밤새 달린 댓글을 확인해야 하니까요(웃음소리). '작가님 천재인가 봐요, 베르과인 르벨인가 봐요, 어딘가에 가둬서 글을 쓰게 하고 싶어요.' 이런 댓글을 보면, 기분이 좋잖아요. 그래서 하루를 기분좋게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좋으니까 제 첫 상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지는 거예요. 꾸준히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댓글을 달아주시고 좋은 내용을 써주시고 칭찬해주신 분들이 제가 이어서 쓸 수 있는 동기부여, 원동력이 되어주셨거든요. 사실 글쓰기의 비결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고, 원동력이 되어 꾸준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끈기있게 그 운을 보조해 준다는 것이 이러한 의의였습니다. 기회를가지고있는사람이꾸준히있는제가눈에보이기때문에이사람에게기회를주려고하는겁니다.


    제가 글을 봤는데 옛날에는 이기적인 사람이 더 좋아지는 시대였는데 이제는 이타적인 사람이 더 좋아지는 시대가 온대요. 아 그래서 제가 넘어갈 수도 있는데 궁금하잖아요. 왜 이전과 달리 반대로 이타적인 사람이 더 잘 될까. 전체가 연결되는 시대는 평판을 감출 수 없는 시대입니다. 만약 어떤 기업이 직원을 뽑아서 재료나 자신 있는 것을 써서 이익을 많이 남기면 돈을 많이 벌게 되니까 승승장구할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요. 그러나 요즘은 회사가 그렇게 운영하면 평판을 숨길 수가 없으니까 좋은 인재는 절대 이 회사에 안 들어가고 부르는 야크 암 운동이 1어자 신고 경우도 많고요. 노화는 이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습니다. 개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에 한 작가가 인간성 논란이 있었다면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고 끝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작가에 1을 들 수 없습니다.


    내가 작문 취미 덕분에 30여년 만에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는 시기가 조 썰매 타기 왔습니다. 그 전에도 별로 불행하지 않았지만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거든요.


    한번 거래처 분들과 점심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분이 이 스토리를 안 믿어요 저는 정스토리가 행복한데 그 형이 믿지 않을 거예요. 내가 행복하다고 하는데 왜 다른 사람이 믿고 스토리를 하지?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야! 너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어! 행복을 가장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끝까지 믿지 않고 갔습니다.그런데 본인 중에 생각해보니 그분 기준으로는 성수동 지하주물공장에서 땀 흘리며 노동하는 노동자가 절대 행복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 그 형의 기준이었죠. 사실어떻게보면보편적으로보는행복의기준에서조금친국어본인이있는스토리일수도있어요. 하지만 전 그때 정스토리에서 행복했어요.


    <회색인간> 맨 마지막에 보면 "피노키오의 꿈"이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간단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산에서 자연인처럼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따분해서 본인 춤을 깎아 인형을 만들면 명나라 1그 본인의 무인형이 움직이고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피노키오처럼. 외롭게 살던 할아버지는 잘 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산에서 할아버지가 본인 무인형인 피노키오와 함께 지내는데 등산객들에게 알려지자 말하는 피노키오 인형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이 등장하는데, 피노키오에게 한가지 소원을 들어줄 수 있대요. 그래서 피노키오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고 할아버지와 정말 손자-할아버지가 되고 나 자신 행복해지고 자신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피노키오가 신에게 기도한 소원은 "본인은 건강한 소본인무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빌었습니다. 왜냐하면 피노키오는 원래 본인무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본인무였으니까 건강한 초보자의 의무가 되는 것이 피노키오의 행복이었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행복에 대해 정의하는 정말 많은 말들이 있고 책도 많지만


    다른 사람은 제 머릿속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정답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직업, 많은 돈, 그런 것들이 안전하고 좋은 길이긴 했지만 제가 느꼈을 때는


    저는 댁에 늦게 발견했어요. 32세에.그와잉눙 글을 쓰고, 누군가를 즐겁게 만들고 거기서 돌아오는 피드백에 대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아직 찾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꼭 찾아보시고 생으로 먹는 행복을 즐겨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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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색 인간>김동식 작가 스테이지(20하나 9. 하나 0.26)의 강연:김동식 작가 정리:북파 북한


    북바북의 스테이지 리뷰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될 의도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_북파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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